▶ 전체 영상으로 보기 👉 https://youtu.be/-oIzED148Dg
표 하나가 신청서의 출발점이었습니다. 같은 미니단호박 15,000과를 도매로 넘기면 연 850만원 적자, 친환경 직판으로 팔면 4,250만원 흑자. 이 숫자를 처음 계산해 놓고 한참을 들여다봤습니다. 3억을 빌려 시작하는 사업의 성패가, 결국 이 한 줄에서 갈린다는 뜻이었으니까요.
2026년 7월, 함평군에 귀농 농업창업·주택구입 지원사업 신청서를 냈습니다. 41쪽, 융자 3억원. 초안과 표·구조는 AI로 만들었습니다. 그런데 막상 써 보니, 어려운 건 문장을 뽑는 일이 아니었습니다. 매 페이지에서 두 갈래 중 하나를 골라야 했고, 그 판단은 AI가 대신 못 했습니다. 이 글은 붙는 법을 알려주는 글이 아닙니다. 결과는 아직 모릅니다. 다만 제가 어떤 갈림길에서 무엇을, 왜 골랐는지는 그대로 적어둘 수 있습니다.
먼저 한 가지. 오십을 넘겨 IT 15년을 접고 내려온 사람이 쓴 신청서입니다. 뒤에 나오는 "이름과 지역만 바꿔도 말이 되는 신청서는 진다"는 원칙은, 이 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. 그래서 함평·보우짱·숫자를 숨기지 않고 적습니다.
갈림길 하나: 도매 600원이냐, 직판 4,000원이냐
가장 먼저 정해야 했던 건 판로였습니다. 심사위원이 궁금한 건 "얼마나 잘 키우나"가 아니라 "빌린 3억을 갚을 수 있나"입니다. 그 답이 판로에서 갈립니다. 같은 생산량, 같은 생산비인데 결과가 이렇게 벌어집니다.
| 같은 15,000과 | 도매 출하 | 친환경 직판 |
|---|---|---|
| 과당 단가 | 600원 | 4,000원 |
| 연 매출 | 900만원 | 6,000만원 |
| 연 손익 (생산비 1,750만원) | 약 850만원 적자 | 약 4,250만원 흑자 |
숫자만 보면 답은 뻔합니다. 문제는 심사위원도 이 계산을 안다는 겁니다. "직판하겠습니다" 한 줄로는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습니다. 그래서 신청서의 절반은 "왜 내가 4,000원에 팔 수 있는가"를 설득하는 데 썼습니다. IT 15년으로 쌓은 영상·콘텐츠 자동화로 마케팅 비용을 0에 가깝게 가져간다는 것. 이건 남이 베낄 수 없는 제 조건이라, 여기서 승부를 봤습니다.
갈림길 둘: "성실히 재배하겠다"냐, 숫자를 박느냐
초안을 뽑아 놓고 제일 먼저 지운 문장이 "성실히 재배하겠습니다"였습니다. 좋은 말 같죠. 아닙니다. 누구나 쓸 수 있는 문장은, 아무 말도 안 한 것과 같습니다. 저는 이걸 신청서를 쓰는 내내 저울로 삼았습니다.
| 같은 의도, 다른 문장 | 심사위원이 읽는 값 |
|---|---|
| "성실히 최선을 다해 재배하겠습니다" | 0점 · 누구 이름으로도 성립 |
| "영상 자동화로 마케팅비 0원, 도매 600원 대신 직판 4,000원" | 검증 가능한 주장 |
규칙은 단순했습니다. 빈 형용사가 보이면 수치나 근거로 바꾼다. "체계적으로"는 "26개 과정 158시간 이수"로, "판로를 확보하겠다"는 "직판 채널 A·B, 예상 회전율 얼마"로. 자료를 뒤지다 이 원칙 하나만 지켜도 문장의 절반이 갈려나간다는 걸 알았습니다. 남은 절반이 진짜 제 신청서였습니다.
심사위원이 이름과 지역만 바꿔도 말이 되는 신청서라면, 이미 진 겁니다.
갈림길 셋: 좋은 숫자를 크게 쓰느냐, 하락에서도 갚느냐
여기서 제일 많이 흔들렸습니다. 매출 목표를 크게 잡고 싶은 마음이요. 그런데 융자는 투자가 아닙니다. 빚입니다. 투자자는 "얼마나 벌까"를 보지만, 융자 심사는 "못 벌어도 갚을 수 있나"를 봅니다. 그래서 상승 시나리오보다 하락 시나리오에 더 공을 들였습니다. 착과율이 떨어지고 가격이 무너져도 상환표가 버티는지를 보여주는 것. 그게 융자 심사의 본질이라고 봤습니다.
상환 설계 자체도 하나의 결정이었습니다. 3억을 한 번에 받으면 첫 해 이자만 600만원입니다. 분할로 실행하면 첫 해 이자를 330만원으로 낮출 수 있었습니다. 270만원 차이. 아직 매출이 없는 첫 해에 이 차이는 큽니다.
| 융자 3.0억 · 연 2.0% · 5년 거치 후 10년 분할 | 내용 |
|---|---|
| 1년차 이자 (분할 실행) | 약 330만원 (일시 실행 대비 270만원 절감) |
| 6년차부터 (거치 종료) | 원금 3,000만원 + 이자 = 연 약 3,600만원 |
| 15년 총 상환 | 약 3.6억 (원금 3.0 + 이자 0.6) |
이 표를 신청서에 그대로 넣었습니다. 실제 제출본의 연차별 상환 계획표를 영상에도 스샷으로 담았고요. 화려한 매출 그래프보다, 이 담담한 상환표가 더 설득력 있다고 판단했습니다.
갈림길 넷: AI가 한 일과, 내가 한 일
"AI로 썼다"고 하면 두 가지 오해가 따라옵니다. 하나는 "AI가 다 써준다"는 것, 하나는 "AI 쓴 게 감점 아니냐"는 것. 둘 다 조금씩 틀렸습니다. 실제로 해 보고 나눈 선은 이렇습니다.
| AI가 한 일 | 내가 한 일 |
|---|---|
| 8개 챕터 초안·구조 잡기 | 무엇을 약속할지 정하기 |
| 표·재무 시나리오 형식화 | 꿈의 숫자를 실현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기 |
| 문장 다듬기 | 현장 근거(선진농가·기관 표준) 채우기 |
가장 어려웠던 일이 가운데 칸이었습니다. "꿈의 숫자를 현실로 끌어내리는 일." AI는 그걸 못 합니다. 판단이니까요. 그리고 감점 이야기. 감점 요인은 AI 사용 자체가 아니라, AI 쓴 티가 나는 일반론입니다. 이름·지역만 바꿔도 되는 그 문장들. 오히려 AI로 아낀 시간을 현장 근거를 채우는 데 쓰면, 남들보다 촘촘한 신청서가 됩니다.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썼습니다.
그래서, 결과는
모릅니다.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심사 중입니다. 붙었다고도, 떨어졌다고도 말할 수 없고, 확률이 얼마 올랐다는 식의 말은 더더욱 못 합니다. 제가 드릴 수 있는 건 처방이 아니라 기록입니다. 같은 15,000과를 어디에 파느냐, 빈 형용사를 남기느냐 지우느냐, 상승을 자랑하느냐 하락을 견디느냐, 판단을 AI에 넘기느냐 내가 쥐느냐. 41쪽은 결국 이런 갈림길의 누적이었습니다.
결과가 나오면, 붙든 떨어지든 그대로 올리겠습니다. 떨어지면 왜 떨어졌는지가 다음 사람에게 더 쓸모 있을 테니까요. 그 기록이 궁금하시면, 영상 쪽 채널에서 이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.
이 글의 수치는 함평군에 실제 제출한 사업계획서(2026년 7월, 41쪽)에 근거합니다. 지원 조건·단가·상환 구조는 지자체·사업연도·개인 상황에 따라 다르므로, 본인 신청 전 관할 농업기술센터와 융자 취급 기관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.
▶ 영상으로 더 보기·구독 → 유튜브 채널
🔗 모든 링크 → linktr.ee/farmreturnlab

댓글
댓글 쓰기